내 인생 첫 인턴이자, 첫 번째 사회생활이자, 첫 번째 양복쟁이의 삶이었던 6개월이 끝났다. 내, 외적으로 많은 성장을 경험한 것도 맞지만, 금융권 전반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이 가장 큰 것 같다. 경험을 통해 좁혀질 줄 알았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더 큰 고민을 낳는 중이고, 멀어만 보이던 취업은 어느새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금융권 인턴 자리가 많지 않고, 네트워킹 중심의 문화 때문에 새롭게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진입장벽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1. 뭘 했는지
내가 6개월 동안 있었던 포지션은 국내 증권사의 IB(investment banking) 중 대체투자 영역에 속하는 인턴 자리였다. 부동산 학회 경험을 통해 첫 인턴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주로 한 것은 인프라 투자 관련 업무였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정리하자면 A) 리서치 B) 재무모델링 C) DM (discussion materials) 작성으로 나눌 수 있다.
A) 리서치

거의 대부분의 금융권 인턴이 하게 되는 업무이다. 산업, 기업, 법령 등 다양한 부문에 대한 리서치를 수행하고, 가끔 데스크 리서치를 통해 나오지 않는 내용은 유료 서비스인 Bloomberg나 Inframation 같은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시간대비 급여 저렴한 인턴들 (혹은 주니어급) 이 하는 일인 만큼 시간이 많이 들어가며, 당연히 업무매뉴얼 같은 것도 없기 때문에 '정석적인'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초기에 얼마나 자세하게, 넓게 조사해야 할지 막막했었고, 어려움이 많았다.
그럴 때 1. 리서치의 목적이 무엇인지? 2. 누가 사용할 것인지? 3. 확장 가능한지? (연계되는 리서치가 있을지?) 등의 맥락을 생각하고 접근하면 힌트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인프라와 관련된 조사를 많이 했는데, 인프라의 경우 규제산업의 성격이 있어 법령에 민감하여 관련 법령 조사를 많이 하게 됐다. 또한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건을 검토할 때는 정말 공부하듯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를 취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생긴 건 좋은 점인 것 같다.
장황하게 적긴 했지만 리서치가 메인인 직장 (증권사 애널리스트, 연구원, 컨설턴트)를 갈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높은 수준의 역량을 요구하진 않기 때문에, 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너무 과한 노력을 쏟는 것은 비추천한다. (노력한다고 길러지는지도 모르겠긴 하다)
B) 재무모델링

재무 모델링 : 과거의 재무 데이터를 통해 미래의 수입, 비용 항목들을 예측하고, 추정치를 토대로 기업(혹은 프로젝트)의 가치평가 (Valuation), 투자 수익률 분석 (Return on investment analysis), 리스크관리 (Risk management)에 사용하는 것
공대생이 느끼기에 금융권 진입에 있어 가장 실력적으로 나뉘는 부분인 것 같다.
단순히 엑셀을 잘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미래의 수입, 비용을 예측하기 위해 산업, 시장,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가 있는지? 그 이해를 바탕으로 추정의 논리를 잘 만들 수 있는지? 등 종합적인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혹은 신입) 에게 모델링업무를 전부 위임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일부를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금융권 인턴들은 모델링은 만져보지도 못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난 운이 좋게도 몇몇 프로젝트에서 모델링에 참여했었고, 일부 사업의 경우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담당한 적도 있다.(드롭한 딜이긴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요즘엔 유튜브, 패스트캠퍼스,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경로도 많으니 '실력적인' 부분을 키우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준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C) DM(discussion Materials) 작성

파워포인트를 얼마나 잘하는가?로 귀결되는 영역인 것 같다.
이 '파워포인트'를 잘한다는 생각보다 여러 능력이 필요하다.
- 각각의 장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한가?
- 헤드라인이 그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는가?
- 모든 장표가 가지고 있는 큰 주제가 동일한가? (주장의 동질성이 있는지?)
- 각종 표, 그래프의 양식, 단위가 일치하여 보기에 불편함이 없는지?
등등 수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화려함으로 대표되는 (양복을 입고 일하는) IB에서 고작 초등학생 때 쓰던 PPT를 통해 무언갈 한다고 생각하면 좀 웃기기도 하다. 하지만 위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PPT는 EXCEL과 더불어 금융권의 가장 기본적인 툴이고, 두 가지 역량 없이는 그 어느 곳도 갈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하나 추가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내용은 대형사일수록 '문서작업'의 비중이 높을 것이다. '보고를 위한 보고', '서류지옥' 다음과 같은 말들이 금융권과 독립적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양복쟁이의 화려함 뒤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paper works 들에 지친 주니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들이겠지만, 본능적으로 그런 업무들을 기쁜 마음에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 내가 느낀 IB?
A) Investment Banking?

Investment Banking 은 금융의 두 영역인 Buy Side와 Sell Side 중 Sell Side에 속한다.
Sell Side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 비즈니스를 한다. 1) 자문업, 2) 자금 모집, 3) 주식, 채권 발행 등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것들은 비용이 크게 들어가지 않는 비즈니스들이다. IB에선 위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비스에 대한 용역비, 혹은 수수료를 통해 돈을 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의 고액연봉의 비결이기도 하다. 돈이 안 들어가는 비즈니스를 하지만, 각각의 딜 수행 시 얻는 수수료의 단위가 최소 1억부터 크게는 100억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 수익에서 비용으로 빠질만한 항목이 크지 않고, 고스란히 급여로 지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인적 자본에 크게 의존하는 비지니스이다.
한편으로는 금융 산업에 속하면서도 돈을 안 쓰고, 다른 주체가 돈을 써주길 기다려야 하므로 굳이 따지면'을'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단순 재무, 산업에 대한 지식적 배경뿐 아니라 협상, 영업에도 능해야 하며, 살인적인 업무강도는 덤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주니어 때 금융권을 통틀어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 IB가 아닐까 생각한다. 더하여 타 금융사에서 IB 백그라운드를 가진 경력자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오는 것 같다.
그럼 그들의 역량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 특정 섹터에 대한 박학다식함 + 금융적 배경
- 국내, 외 를 가리지 않는 풍부한 네트워킹
1,2를 통해 중간자로서 Equity, Debt, Mezz에 대한 적절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것이 IB의 주된 역할이다. (그림에서 중간에서 조율하는 것처럼 표현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B) 최근 동향
그러나 최근 투자 상품의 수요, 공급처 모두 지식수준이 많이 올라오고, 네트워킹도 점차 넓어지면서 중간자인 IB의 입지가 좁아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Buy Side에 해당하는 국민연금(NPS), 생명보험사 등에서 IB 출신 경력자들을 영입하고, 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운용사의 투자상품을 IB를 거치지 않고 인수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IB는 기존의 중간자 역할 기반의 비지니스 모델에서 직접투자, PEF 설립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다.
금융 산업이 성숙해짐에 따라 이전처럼 단순 지적 우위, 혹은 인맥 우위가 가져다주는 높은 경쟁력이 점차 낮아지고 있고, 이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앞으로 장기적인 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1) 금융산업이 성숙해짐에 따라 사업 다각화가 필수적인 현 상황이지만, 2) 다양한 역량이 요구되는 집단이기에 주니어로 시작하기에 좋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업의 다각화를 할 수 있는, 즉 자기 자본을 사용할 여력이 되거나 변화에 적극적인 회사로 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3. 마치며
기존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땐 정말 개인적인 감정들과 경험을 담은 글을 쓰려 시작했으나, 6개월 동안 얻은 가장 큰 수확이 'IB 및 금융권 업계에 대한 이해'였기 때문에, 설명글처럼 쓰이게 됐다. 개인적인 감정과 성찰을 담은 글은 다른 글에서 다뤄보려 한다. (아마 반기 정산글, 혹은 연말 정산글에 나오지 않을까?)
이 글을 통해 금융권에 진입하려는, 특히 증권사 취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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